월요시네마 Monday Cinema

월요 시네마 7 영화 '트위스터스' 김경수 회원 발제

피프레시 월요 시네마 9월 영화 <트위스터스> 김경수 회원 발제

 

관련 기사 보기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9625

 

 

국제영화비평가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la Presse Cinématographique. 이하 FIPRESCI/피프레시) 한국지부는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 오후 8~10, (Zoom)으로 월요 시네마 세미나를 열고 있다. 지난 930일 김경수 영화평론가가 정이삭 감독의 <트위스터스>(2024)에 대해 발제한 뒤 참가자들이 총 2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이번 줌 세미나에는 60여 명이 참여했다. 피프레시는 1930년 전 세계의 전문영화비평가와, 영화기자, 각국의 영화 단체들이 영화문화의 발전을 위해 결성한 단체로, 한국지부의 경우 1994년 창립됐다.

 

이하는 김경수 영화평론가의 발제문.

 

왜 이 영화를 보아야 하는가?-Cli-fi 서사의 시대

 

미국에서는 정이삭 트위스터스(2024)가 개봉한 직후 둘러싼 논란이 생겼다. 영화 곳곳에 과학자와 기업가의 거래, 재난 피해자의 재산으로 돈벌이하는 기업가, 황폐화된 시골 농장, 전례 없는 규모의 재난에 파괴당한 생태계 등 기후 위기 시대를 둘러싼 징후가 가득한데도 영화 안에서는 기후위기가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이삭 감독은 이에 영화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배제하려 했다라고 답했다. 이는 전략적인 선택에 가깝다. 정이삭 감독이 의도했든 아니든 과거엔 재난 영화라 불렸을 법한 영화가 지금은 기후 위기의 알레고리로 독해되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지금 영화를 보는 통로 중 하나다. 이미 우리가 기후 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기 시작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지구온난화라는 말이 일반화되기도 전에 UN에서 기후 열대화global boiling이라는 신조어를 제시할 정도다. 2015년에 체결된 파리기후협정에서는 지구의 각 국가가 협력해 지구 평균 기온의 1.5도 상승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1.5도 상승은 막을 수 없다는 전망이 팽배해 있다. 이에 따라서 최악의 폭염과 장마 등으로 이미 정치권에서도 기후가 중요 의제로 떠오르는 중이다. 이미 소설에서는 기후픽션Cli-fi이라고 불리는 소설 장르가 도입되면서 날씨와 서사의 연결고리를 물색하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롤랑 바르트가 한 말대로 날씨는 이데올로기. 우리는 날씨를 통해서 사유할뿐더러 날씨의 영향권 아래에서 살아가는 중이다. 또 바다나 나무 등 자연물도 분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영화도 이러한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 이미 Cli-fi라고 이야기되는 영화가 여럿 논의되는 중이다. 퓨리오사매드맥스등 블록버스터 영화는 기후 위기로 이미 망가진 황무지wasteland 장르를 그려냈다. 퓨리오사의 경우 전쟁으로 인해서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그 후에도 생존을 위해 자연과 여성을 파괴할 것이라는 에코-페미니즘에 기반한 테마를 그려낸다. 반면 택시 드라이버의 각본가이자 로베르 브레송 영화를 연구한 감독 폴 슈레이더의 퍼스트 리폼드는 환경파괴를 외적인 상황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그는 어느 시골 본당 신부의 일기의 구도 안에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속 라스콜리니코프를 보는 듯한 반-영웅Anti-hero를 그려내며 환경파괴를 인류의 실존적인 위기로 다룬다. 라스콜리니코프가 나폴레옹을 위시로 한 서구적 영웅주의를 접하고 노파를 죽이듯, 이 영화 속 톨러(에단 호크)도 환경주의자를 만난 후 종교계와 기업 등에 분노해 퍼포먼스적인 자살을 시행하려고 한다. 환경은 외적이든 내적이든 인간다움에 상흔을 내고 있고, 그 너머에는 이 상황이 불가역적이라는 종말론적 사고가 깃들어 있다. 이처럼 기후 위기에 대한 불안과 우울, 그것을 이미지로 포착하려는 생태적 사유는 영화 한가운데에 깊숙이 반영되는 중이다.

 

영화 감독 가운데에서도 생태적 사유를 강조하는 이도 늘고 있다. 그린 나이트를 감독한 데이빗 로워리는 인디와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누군가 내 영화에 생태주의적 해석을 한다면 기어이 동의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본인의 영화에 깃든 생태주의를 긍정했다. 돈 룩 업을 감독한 아담 맥케이는 “5~6년 전에 급격한 기후 온난화의 구체적인 과학적 사실과 위험성을 깨달았고 이 영화(Don't look up)를 통해서 이를 경고하려고 했다.”라고 이야기했다. 돈 룩 업은 기후위기 자체라기보단 기후위기를 둘러싼 온갖 반응을 운석 충돌이라는 전형적인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돌려서 우화적으로 그려내는 영화다. 가짜 뉴스와 과학자에 대한 불신과 음모론 등 온갖 반응은 기후위기에 대한 반응과 직결된다. 다만 이런 반응은 일부에 불과하다. 한 매체의 조사에 따르면 할리우드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250편의 영화에서 기후 위기의 존재 여부를 분석한 연구 결과 영화 중 32(12.8%)에서만 기후 위기가 존재하고 그 중 24편만(9.6%)에서만 등장인물이 기후 위기를 인지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기후 위기에 대한 담론이 생기는 중이지만 기후 위기를 직접 언급하기에는 아직은 부담이 큰 듯하다. 정이삭 감독이 이야기했듯이 영화가 기후 위기에 대한 해석, 즉 정치적 해석과 기후 위기에 대한 계몽으로 환원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또한 블록버스터 등 큰 규모의 영화는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선과 악, 문명과 자연 등 이분법적인 대립 구도가 있어야 하는데 기후 위기 담론은 경계를 무너뜨리며 진행되기 때문이다. 트위스터스(2024)의 매력은 토네이도()와 과학자(아군)이라는 이분법을 반복하지 않는다. 대신 토네이도라는 실존적 조건을 두고 부딪히는 두 과학자, 그리고 유튜버라는 세 캐릭터의 대립 구도로 재구성한다.

 

트위스터스원작과 트위스터스의 차이-자연을 해석하는 두 프레임

 

재난 영화가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90년대부터다. CG의 혁신적인 발전으로 인간은 우주나 사이버스페이스 등 가상의 공간을 그려내는 것은 물론 스크린 안에서 자연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연출을 가능하게 했다. 그 이전까지 영화에서 자연은 인위적으로 기후를 연출하지 않는 한 통제가 불가능했다. 데이비드 린의 라이언의 딸아라비아의 로렌스등은 기후와 자연, 인간이 한 데에 어우러져 있다. 라이언의 딸은 촬영 현장에서 불어닥치는 폭풍 한가운데 인물이 위치해 있어서 인물이 자연에 감응한다는 느낌을 안긴다. 소마이 신지의 태풍클럽도 마찬가지다. 태풍은 캐릭터의 억압된 혼란을 불러오는 마술과 같은 순간을 선사한다. 인위적으로 연출하지 않기에 캐릭터와 그들이 발 디디고 서 있는 풍경 사이에 마술적인 삼투가 가능해진다. 이는 로케이션에서 촬영되었기에 인물과 풍경이 무대와 거기 앞에 서 있는 인간으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남긴다. 오히려 풍경에 인물이 들어가 있다는 감흥을 준다.

 

 

 

이에 비해서 사랑을 비를 타고는 어떠한가. 스튜디오에서 쓰는 강우 장치를 인물의 심상으로 연출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작품이다. 자크 드미의 쉘부르의 우산오프닝은 기후를 인위적으로 연출함을 드러낸다. 쉘부르 시의 군중이 색색깔의 우산을 쓰고 있으며 카메라는 이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는 부감 숏으로 찍는 중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카메라가 구름의 시점에 있다는 것이다. 세트에서 비를 뿌리는 장치를 쓰고 있으며, 카메라는 비를 뿌리고 있는 장치를 은폐한다. 대신 물방울이 노출되면서 빗방울이 보인다. 기후가 조작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근대 소설에서 말하는 풍경론과 이어져 있다. 일본의 문학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 근대문학의 탄생>에서 회화의 기하학적 원근법을 객관과 주관을 발명한 장치로 서술하고 있으며, 여기서 근대문학에서의 풍경이 탄생했다고 본다. 원근법은 하나의 점에서 풍경을 보는 투시도법에 근간하고 있으며, 문학에서는 화자의 관점을 거쳐서 자연이 관찰되는 주관적인 풍경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원근법이 탄생하기 이전의 종교화는 풍경을 서사에 최소한의 당위만 제공한다. 원근법이 탄생한 이후 풍경은 일정한 시공간에 있는 객관적인 대상으로 묘사된다. 근대문학은 이를 삼인칭 객관적 시점 서술로 계승한다. 즉 근대 문학은 풍경을 인물이 움직이는 배경으로 고정하면서 탄생한 셈이다. 풍경은 인물이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실존적 터전이자 심상과 이어져 있다. 스튜디오 영화는 자연을 인위적으로 만들면서까지 그 위에 서려 한다.

 

CG는 스튜디오에서 그려진다. 레프 마노비치는 CG를 도입한 뉴미디어의 영화를 키노 브러시(그리는 영화)라고도 이야기한다. 포레스트 검프의 오프닝을 생각하면 편하다. 깃털이 동선을 그리며 정확히 캐릭터의 앞에 살포시 내려앉는 것이 자연에서 가능한가? 아니다. 깃털은 무작위로 날아가고 말 것이다. 이런 CG 이미지의 핵심은 할리우드의 자본이다. 투모로우에서 토네이도가 가장 먼저 부수는 사물 중 하나는 할리우드라는 기표다. 할리우드만이 할리우드를 파괴할 수 있는 자연을 연출할 수 있다는 자만으로 보인다. 이러한 영화 속 자연의 위대함은 자본의 위대함을 자연이라는 대리물로 드러낸 것에 불과한 셈이다. 96년에 제작된 트위스터를 포함하여 90년대 유행한 재난 영화는 모두 할리우드의 기만적인 스펙터클 위에 서 있는 셈이다.

 

90년대의 재난 영화는 자연물에 동선을 더하면서 인위적인 풍경으로 만든다. 더 정확히 말해서 캐릭터의 동선을 차단하고, 캐릭터를 궁지에 몰아세우는 괴물로 등장한다. 단테 스피크에서 용암이 그 사례다. 하물며 투모로우(2004)에서는 한파가 바닥에 빙하를 그리며 인물을 추적하는 동선을 지닌다. 기후 자체를 괴물화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때의 자연이 철저하게 CG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기후 위기를 처음 재난으로 그린 투모로우(2004)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트위스터스(2024)에서 인간에 영향을 끼치는 토네이도와는 다르게 토네이도는 블루 스크린에만 있어서 인물에게 어떤 물질로 번역되지 않는다. 강풍기로 날아오는 사물을 동원하지 않는 한 인물에게 그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는 셈이다. 트위스터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프닝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강풍기를 튼 다음 배우의 머리를 휘날리게 하면서 나무 파편을 CG 이미지를 그려내는 방식으로 재현한다. 배우는 파편이 튀더라도 상처를 입지 않는다. 이때 오프닝에서 날아가는 조의 아버지도 문이 뜯어져 날아간 후에 CG

0

추천하기

0

반대하기

첨부파일 다운로드

등록자심영섭

등록일2024-10-30

조회수16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밴드 공유
  • Google+ 공유
  • 인쇄하기
 
스팸방지코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