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네마 Monday Cinema

월요 시네마 13 '에밀리아 페레즈' 안숭범 평론가

피프레시 3월 월요시네마 <에밀리아 페레즈>

자유의 몫과 죽음의 값

 

324일 안숭범 영화평론가 발제, 20여 명 열띤 토론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국제영화비평가 세미나 열어

 

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0384

 

국제영화비평가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la Presse Cinématographique. 이하 FIPRESCI/피프레시) 한국지부는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 오후 8~10, (Zoom)으로 월요 시네마 세미나를 열고 있다. 피프레시는 1930년 전 세계의 전문영화비평가와, 영화기자, 각국의 영화 단체들이 영화문화의 발전을 위해 결성한 단체로, 한국지부는 1994년 창립됐다.

 

'에밀리아 페레즈' 포스터. 사진 제공=그린나래미디어

'에밀리아 페레즈' 포스터. 사진 제공=그린나래미디어

사회자

 

오늘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사회를 맡은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회장 심영섭입니다. 오늘은 안숭범 영화평론가를 모시고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겠습니다. 안숭범 평론가는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대학 부설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 소장이시기도 하고요. 영화평론가이자 시인이기도 합니다. 제가 좋아했던 EBS <시네마천국>을 진행하신 바 있으며 영화평론가협회 총무이사,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도 지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등 여러 영화제에 관여했고, 저서로는 영화평론집 <환멸의 밤과 인간의 새벽> 등이 있습니다.

 

발제자

 

안녕하세요. 방금 소개 받은 안숭범입니다. 오늘은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에밀리아 페레즈>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저의 발제에 문학적인 제목을 붙여 봤는데요. ‘자유의 몫과 죽음의 값이란 제목으로 준비한 발표를 해보겠습니다.

 

자크 오디아르는 누구인가

여기에 참여하시는 선생님들이라면, 영화를 사랑하고 저명한 감독과 작품들에 대해서는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을 줄 압니다. 물론 자크 오디아르 감독과 그의 전작에 대해서도 이해를 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래도 몇몇 사전 정보를 공유하면서 본격적인 발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1952년생으로 벌써 73세입니다. 소르본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아버지가 프랑스 고전 누아르, 범죄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유명했기에 아버지의 영향을 물려받은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그리고 로만 폴란스키 감독 밑에서 편집 보조 등으로 일을 하면서 영화적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자크 오디아르는 범죄 장르, 그중에서도 누아르 영화의 시청각적 약호화 방식을 잘 활용하면서도 사회적 리얼리즘을 결합한 영화들로 명성을 쌓아왔습니다.

 

'에밀리아 페레즈' 스틸컷. 사진 제공=그린나래미디어

'에밀리아 페레즈' 스틸컷. 사진 제공=그린나래미디어

최근 그의 작품들 대부분은 유럽 3대 영화제라는 칸, 베니스, 베를린은 물론이고 아카데미 영화제에서도 주요상을 수상했습니다. 프랑스 영화 거장 중에서는 한국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국제적인 지명도 면에서 동시대 프랑스 최고 감독 중 한 명이라고 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최근 그가 만든 작품 중에서는 서부극의 외피를 입은 작품(<시스터스 브라더스>)을 비롯해 범죄, 누아르 장르 이외에도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시도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필모그래피 전반을 보면, ‘작가주의적인 장르영화또는 장르영화적 작가영화란 말로 그 성격을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먼저 <에밀리아 페레즈>의 줄거리를 캐릭터의 성격에 기반해 요약적으로 공유해보겠습니다. 이 영화는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 수장이었던 사람(마니타스/에밀리아),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아 거듭나는 과정과 그 이후의 삶을 다룹니다. 그의 곁에는 관찰자이자 조력자로 등장하는 흑인 여성 변호사가 있습니다. 많은 관객들이 마니타스/에밀리아에 더 주목하지만, 저는 흑인 여성 변호사 리타의 상징적 위치가 흥미로웠습니다. 그녀가 다루는 법이란, 상식적 차원에서 사회 정의를 지키는 보루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유능하고 야심이 있지만 비윤리적이거나 모순적인 변호를 맡아 성공시켜야 하는 등, 직업적 환멸을 느끼는 상태로 등장합니다.

 

'에밀리아 페레즈' 스틸컷. 사진 제공=그린나래미디어

'에밀리아 페레즈' 스틸컷. 사진 제공=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초반 마니타스는 자기 정체성에 맞는 삶을 실천하기 위해 성전환수술을 감행하고자 결단합니다. 그때 리타에게 도움을 간청하지요. 자기를 구원하기 위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삶으로 거듭나기 위해 리타의 능력이 필요했던 거지요. 리타의 도움으로 마니타스는 결국 에밀리아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신체로 거듭납니다. 또 사회운동을 위해 라 루세시타라는 단체를 세웁니다. 그 뜻이 작은 빛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마니타스가 에밀리아가 된 이후, 그는 폭력으로 점철된 과거와 작별하고, ‘작은 빛이 되고자 합니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그 비약적인 과정을 관찰자인 리타를 통해 매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영화의 제작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라종의 소설 <에쿠트>를 원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원작을 보면, 수술을 받고 싶어하는 트렌스젠더 마약상이 등장합니다. 소설에서는 폭력적 전과들에 쫓기던 그가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성전환을 도피적 도구로 삼는 것처럼 나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성전환 수술이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결단인 것처럼 그려집니다. 성전환의 성격이 크게 바뀐 셈입니다. 리타가 연기한 변호사도 소설 속에서는 남성 변호사였는데요. 자크 오디아르는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야심찬 여성 변호사로 대체합니다. 영화 첫 장면을 보면, 리타는 백인 남성 변호사가 주문하는 비도덕적비윤리적 변호 활동을 수행해야 하는 존재로 나옵니다. 아내를 죽인 살인범이지만, 돈과 권력을 가진 그를 무죄로 만드는 변호에 나서고 성공하지요. 백인 남성 변호사의 변론 내용을 모두 그녀가 써준 것으로 나옵니다. 그렇게 그녀는 사회적 성공을 거두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양심을 속여야만 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결과적으로 마니타스도 리타를 통해 삶의 출구를 찾지만, 리타 역시 에밀리아가 된 마니타스의 이후 행보를 도우면서 다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획득하지요.

 

'에밀리아 페레즈' 스틸컷. 사진 제공=그린나래미디어

'에밀리아 페레즈' 스틸컷. 사진 제공=그린나래미디어

자 다시 이 영화의 제작 과정에 대한 몇몇 정보를 더 공유하겠습니다. 마니타스/에밀리아를 연기한 스페인 출신 트랜스젠더 배우인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현실에서 코로나 시기 직전 성전환 수술을 한 인물입니다. 잘 알다시피 그는 칸영화제에서 트랜스젠더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받습니다. 영화 시나리오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오디아르 감독은 그와 메일을 주고 받으며 마니타스/에밀리아 캐릭터 구축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갖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녀는 현실에서 10대 딸과 와이프와 함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이 영화는 멕시코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멕시코 바깥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집니다. 압도적으로 스튜디오 촬영이 많고요. 영화가 세상에 나온 이후 배우들의 어색한 억양과 대사 소화 능력을 놓고 비난이 있었습니다. 주연 배우들이 스페인 출신,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이다 보니 멕시코식 스페인어 구사에 실패했다는 지적입니다. 또한 할리우드 등에서 반복 재생산해온 멕시코 갱단 이야기, 마약상 이야기에 대한 클리셰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멕시코시티를 범죄에 얼룩진 이미지로 소비해온 관습에 기대고 있다는 겁니다. 한편 뮤지컬 넘버가 나오는 장면 상당수는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는데요. 그 장면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굉장히 복잡한 리허설을 거친 것으로 느껴집니다. 스테디캠으로 역동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느라 상당히 고생한 흔적이 있습니다. 또 다른 사실은, 마니타스/에밀리아 캐릭터를 성격화하기 위해 오디아르가 영화의 3분의 1을 밤, 곧 어둠 속에서 촬영했다는 전언입니다. 그런데 오디아르의 전작들 역시 도시의 야경 안에 숨겨진 어두운 뒷골목을 다룹니다. 오디아르는 누아르의 시각적 클리셰를 충분히 활용해왔고 이 작품에서도 이를 연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의 몫 - 소외의 가시성

네 이제부터 본격적인 발제에 들어가겠습니다. 첫 번째로 <에밀리아 페레즈>는 자유의 몫, 혹은 자유의 대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주제는 오디아르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디아르는 그동안 수많은 영화에서 흥미로운 캐릭터들을 창조했는데요. 그들 대부분은 범죄 혹은 폭력으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감옥에서 이제 막 출소해서 보호 감찰을 이미 받고 있거나(<내 마음을 읽어 봐>) 지금도 크고작은 범법 행위와 더불어 살아가지요(<예언자>, <러스트 앤 본>, <시스터스 브라더스>). 예를 들어 <러스트 앤 본>의 알리는 아들이 보는 앞에서 상점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고, 그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 어린 아들은 아빠의 모습을 그저 받아들입니다. 한편 오디아르 감독이 만든 캐릭터의 또 다른 특징은 장애인들을 주인공으로 활용한다는 거지요. <내 마음을 읽어 봐>의 칼라는 청각장애인이고, <러스트 앤 본>의 스테파니는 다리가 잘리는 사고를 입지요. <시스터스 브라더스>의 찰리도 손이 잘립니다. 그가 많이 다룬 또 다른 캐릭터는 난민입니다. 예를 들어 <디판>의 디판은 스리랑카에서 반군 활동을 하다가 프랑스로 건너 가 난민으로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에밀리아 페레즈>가 다룬 성소수자는 지금까지 언급한 캐릭터들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범법자, 장애인, 난민 등은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주류 사회의 시선에서 편견을 갖기 쉬운 부류입니다. 실제로 여러 영화들에서 그들은 다른 기준의 폭력에 노출되어 왔습니다. 오디아르는 그들이 그런 폭력적 조건 속에서 어떤 의지와 결단을 해나가는가를 지켜보게 하지요.

 

'에밀리아 페레즈' 스틸컷. 사진 제공=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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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심영섭

등록일202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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