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레시 12월 월요시네마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관하여
… 타인을 구하면서 이뤄낸 자기구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승인 2025.03.24 13:5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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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송연주 영화평론가 발제, 황영미 영화평론가 사회,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국제영화비평가 ‘줌’ 세미나 열어
국제영화비평가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la Presse Cinématographique. 이하 FIPRESCI/피프레시) 한국지부는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 오후 8~10시, 줌(Zoom)으로 월요 시네마 세미나를 열고 있다. 지난 12월은 팀 밀란츠(Tim Mielants) 감독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2024)에 대해 황영미 영화평론가가 사회를 맡고, 송연주 영화평론가가 발제했다. 피프레시는 1930년 세계 각국의 전문영화비평가와 영화기자, 영화 단체들이 영화문화의 발전을 위해 결성한 단체이며, 한국지부는 1994년 창립됐다.
사회자 :
안녕하세요. 피프레시 한국본부 제9대 회장을 했던 영화평론가 황영미입니다. 제가 한국경제에 한경에세이로, ‘사소하지만 강한 용기’라고 제목을 붙여서 이 영화를 다뤘습니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은 아일랜드 출신 작가 클레어 키건(Claire Keegan)이 2021년 발표한 동명의 소설이 원작입니다. 1985년 아일랜드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부조리한 상황을 볼 때, 어떻게 행동해야할까? 부조리가 없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구조적으로 부조리가 없었던 때가 없었습니다. 그에 대하여 우리가 어떻게 양심적으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고민과 선택을 주인공 빌 펄롱(킬리언 머피 Cillian Murphy)의 삶을 두고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원작이 훌륭해서 배우 킬리언 머피가 적극적으로 제작과 주연을 맡아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팀 밀란츠 감독은 2019년 체코 카를로비바리 국제 영화제에서 <패트릭 De Patrick>으로 감독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제74회(2024년 2월) 베를린 국제 영화제 개막작이자 경쟁 부문 초청작으로 상영되었습니다. 또한, 메리 수녀(수녀원장) 역의 에밀리 왓슨(Emily Watson)이 이 영화로 은곰상(조연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발제자 :
안녕하세요. 송연주입니다.
킬리언 머피가 영화 <오펜하이머(Oppenheimer, 2023)>에서 주연을 맡아 오스카상을 수상한 이후 영화 주연을 맡아 공개된 첫 작품입니다. 킬리언 머피가 이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설립한 제작사의 이름은 Big Things Films 입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이 전하는 메시지가 ‘Small Things’가 아니라 ‘Big Things’라는 느낌을 줍니다. 벤 애플렉(Ben Affleck)과 맷 데이먼(Matt Damon)의 제작사 Artists Equity도 이 영화 제작을 함께 하였습니다. 뮤지컬 <원스(Once, 2012)>로 토니상 뮤지컬 극본상을 수상한 엔다 월시(Enda Walsh)가 각색을 맡아서 더 기대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현장에서 각색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빌 펄롱의 의식을 따라 서술되는 원작 소설을 짚으면서 영화의 각색을 중심으로 발표를 진행하겠습니다.
1985년 아일랜드
소설은 1985년의 아일랜드 더블린을 매우 구체적으로 표현합니다. 당시는 젊은이들이 런던, 보스턴, 뉴욕으로 이민을 떠난다는 소식이 라디오를 통해 전해지고, 찰스 호히 수상이 대처 수상과 북아일랜드 관련 협정을 맺었고, 벨파스트 연합주의자들이 더블린이 자기네의 문제에 간섭하는 것에 항의하는 뜻에서 북을 치고 행진하며, 비료공장은 직원을 해고하고, 조선소, 펄롱이 아내를 만났던 회사, 그리고 꽃집마저도 문을 닫는 혹독한 시기였습니다.
영화도 1985년의 아일랜드를 카메라에 잘 담았습니다. 축축하고 어둑한 거리, 석탄 공장,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의 젊은이들이 돈을 아껴서 연인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는 모습들입니다. 다만, 라디오에서는 음악이 흐르고, TV에서는 쇼가 보여 집니다. 영화는 소설이 다루는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사장으로서, 가장으로서의 빌 펄롱이 가진 현재의 상황에 카메라는 더 깊이 들어갑니다.
수녀원
실제, 막달레나 수녀원은 1922년부터 1996년까지 약 74년간 미혼모와 어린아이들의 인권을 유린했습니다. 카톨릭 교회가 아일랜드 국가와 함께 운영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곳이었습니다.
소설이 묘사하는 수녀원은 풍경이 크리스마스카드 같은, 위풍당당한 건물이며, 선한목자수녀회가 수녀원을 맡아 관리하고, 기초교육을 제공하는 직업 여학교도 운영하며, 세탁소도 겸업하는 곳입니다. 수녀원이 운영하는 세탁소가 세탁을 깨끗하게 하는 것으로 평판이 좋습니다. 다만, 직업학교에 있는 여자들은 타락한 여자들이어서 교화를 받는 중이라는 소문이 있고, 이 소문을 빌 펄롱의 아내 아일린이 믿고 있습니다. 더러운 세탁물의 얼룩을 씻어내며 속죄하는 거라는 소문, 또는 수녀님들이 고생 중이라는 소문, 또는 모자 보호소라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수녀원의 이야기는 소설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소설 시작부분에서 빌 펄롱의 마음이 조금씩 일렁이는데 그 이유를 감춰두었다가 소설 중반에서야 빌이 무엇 때문에 과거를 반추하게 되었는지 알려줍니다. 알록달록 열매가 열렸던 날, 수녀원에서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소녀를 만났고 그 소녀를 외면했던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빌의 어린 시절과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시작되고 5분쯤에 수녀원이 바로 등장합니다. 빌 펄롱이 석탄을 배달하러 가서, 부모로부터 수녀원에 강제 구금되는 여성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는 빌 펄롱의 심리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소설보다 빠르게 사건을 드러내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빌 펄롱
1985년 더블린에서 석탄 공장을 운영하는 빌 펄롱. 소설 초반, 빌 펄롱의 목표는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어려워하는 이 시기에,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여학교인 세인트 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는 것이 삶의 목표입니다.
영화는 빌 펄롱의 이런 심경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다만, 석탄 배달을 마치고 고단한 몸으로 집에 돌아와 가족과 식사할 때, 펄롱의 두 딸이 세인트 마거릿 학교 교복을 입고 있고,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아빠인 빌에게 이야기해줍니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사복을 입은 세 딸과 교복을 입은 두 딸을 보여주며, 학교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소설을 보면, 빌 펄롱은 1946년 4월 1일생입니다. 만우절에 태어나서 바보일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름 빌은 William(윌리엄, will의지, helm보호자)의 애칭입니다. 영화에서 미시즈 윌슨은 어린 빌을 ‘윌리엄’이라고 부릅니다. 아일랜드에서 빌은 개신교도 이름이고, 가톨릭교도는 잘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소설은 어린 빌이 학교에서 비웃음과 놀림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외투 뒤쪽이 침 범벅이 되어 돌아온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큰 집에서 자란 덕분에 애들이 조금 봐주는 것도 있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석탄 야적장에서 일하다가 지금의 자리로 올라갔습니다. 건실한 개신교도 특유의 습관을 들여 믿음직한 스타일입니다.
이런 빌 펄롱이 일상에 회의를 갖기 시작합니다. 소설과 영화 모두, 시간순으로 생각해보면, 수녀원에서 자신을 도와달라는 소녀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 이후로 빌 펄롱은 어린 시절을 떠올립니다. 미시즈 윌슨과 어머니 세라 펄롱, 그리고 네드에 대한 기억입니다.
과거의 인물들 - 미시즈 윌슨과 세라 펄롱, 네드
소설에서 미시즈 윌슨은 전사한 남편의 유족연금을 받고, 가축(소와 양) 농장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미망인입니다. 자식이 없이, 시내에서 몇 마일 떨어진 큰 집에 혼자 살고, 개신교도입니다. 독실하지는 않지만 개신교도로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입니다.
빌 펄롱의 어머니 세라는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가사 일꾼으로 일하던 열여섯 살 때, 빌을 임신하였습니다. 세라의 가족들은 세라를 외면했지만, 미시즈 윌슨은 세라를 해고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라를 자신의 집에서 지내며 일하게 해주어서, 세라는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빌을 낳고 키울 수 있었습니다. 빌 펄롱이 열두 살 때, 세라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그 바람에 빌에게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못했습니다.
네드는 미시즈 윌슨의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미시즈 윌슨의 건초를 훔쳐서 노새가 먹을 풀이 없어 힘들어하는 일꾼에게 주었던 적이 있고, 여러 번 건초를 훔쳐 도와주었다가, 흉측한 것이 도랑에서 길을 막아 그 일을 멈추었다고, 그것을 후회한다고 어린 빌 펄롱에게 말했었습니다. 빌이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을 때, 네드는 윌슨 집에 왔었던 영국 친척들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로 인해 빌은 자신의 아버지가 영국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훗날 빌은 네드가 빌의 아버지이지만, 그것을 숨기고, 빌에게 더 나은 혈통 출신으로 생각하게 만들고서 빌의 곁을 지켜주었다는 것을 은총이었다고 깨닫습니다.
현재의 인물들 - 아일린과 다섯 딸들, 미시즈 케호
소설을 읽었을 때, 영화 각색에서 가장 사건을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된 인물은 아일린이었습니다. 빌 펄롱의 변화에 가장 현실적인 걸림돌이 될 것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돕는 것보다는 자신의 가족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빌 펄롱의 아내 아일린은 결혼 전, 그레이브스 앤드 컴퍼니 사무실에서 일했습니다. 아일린은 현실적이고 기민한 생각을 가졌고, 빌은 아일린의 이런 성향에 끌려 결혼을 했습니다. 이제 아일린은 다섯 딸을 낳은 주부가 되었습니다.
아일린의 현실적인 성향은, 빌이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싫어하는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수녀원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제 무덤을 판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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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2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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