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레시 8월 월요시네마 <프렌치 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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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9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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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6일 이명희 영화평론가(피프레시 전 회장)가 트란 안 홍 감독의 <프렌치 수프>(2023)에 대해 발제한 뒤 참가자들이 총 2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여섯 번째 줌 세미나에는 20여 명이 참여했다. 피프레시는 1930년 전 세계의 전문영화비평가와, 영화기자, 각국의 영화 단체들이 영화문화의 발전을 위해 결성한 단체로, 한국지부는 1994년 창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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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와 소리와 색채가 서로 화답한다” “Les parfums, les couleurs et les sons se répondent.” (보들레르Baudelaire의 시 Correspondances 에서)
보들레르의 이 유명한 시 구절이 가장 어울리는 영화를 꼽는다면 아마 <프렌치 수프>일 것입니다. 19세기말 두 요리사, 도댕과 외제니의 로맨틱한 사랑이야기인 <프렌치 수프>는 프랑스 미식에 바치는 찬사이며, 미각을 비롯한 오감을 섬세하게 강조하는 음향, 색채. 빛의 향연을 선사합니다. 영화 대사와 소품, 의상, 배경의 연출(미장센)을 통한 충실한 고증과 함께 19세기 프랑스 미식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보기는 문화읽기가 됩니다.
1962년 베트남에서 출생하여 12세에 프랑스로 이주한 트란 안 훙(Trần Anh Hùng) 감독은 1993년 데뷔작 <그린파파야 향기(L’odeur la papaye verte)>나 1995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씨클로(Cyclo)>에서 감각의 예술적 효과를 발휘하는 연출력으로 이미 인정받았습니다.
깐느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그린파파야 향기>는 오스카 외국영화상 후보로 오른 첫 번째의 그리고 여전히 유일한 베트남영화입니다. 그리고 30년후 2023년 일곱 번째 장편으로 다시 깐느영화제에 돌아와 감독상을 수상한 <프렌치 수프>도 이번에는 프랑스영화를 대표하여 오스카 외국영화상 후보에 지명되기도 했습니다.(쥐스띤 트리에 감독의 <추락의 해부>를 제치고 <프렌치 수프>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영화로 선정되자 프랑스에서는 큰 논란이 일었다. <프렌치 수프>가 그만큼 ‘프랑스적’인 영화라는 의미도 있다.)
영화화된 감각
2010년 음식 테마로는 세계최초로 유네스코 무형문화자산으로 지정된 프랑스 미식(gastronomie)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넘어, 식자재를 고르고 요리하는 방식,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방식을 포함합니다. 특히 “요리의 향을 통한 후각, 테이블 장식과 요리 모양을 통한 시각, 시식을 통한 미각, 식기와 요리가 빚어내는 청각 등 모든 감각을 동원한다.”라는 설명에서 보듯, 오감을 만족시키는 식사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프랑스관광청에 등록된 프랑스의 미식의 내용을 보면, “프랑스 미식은 다음의 세부사항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신선하고 질 좋은 재료 구입, 현지 특산품 선호, 조화를 이루는 맛, 신중한 요리의 선택, 프랑스 지방의 다양한 재료; 요리와 와인의 조화; 테이블의 미학; 대화” “어떠한 경우에도 프랑스 미식은 음식과 분위기, 인간 중심적인 식사를 기반으로 한 전반적인 조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중략...) 미식은 단순히 먹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테이블 매너 또한 매우 중요하다. 프랑스 미식은 요리의 향을 통한 후각, 테이블 장식과 요리 모양을 통한 시각, 시식을 통한 미각, 식기와 요리가 빚어내는 청각 등 모든 감각을 동원한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출처
https://www.france.fr/fr/article/repas-gastronomique-francais/#du-choix-des-produits-a-la-degustation-4)
요리의 오감은 공감각적 힘을 발휘하여, 정신, 관념의 세계로 이어줍니다. ‘그린 파파야 냄새’라고 번역해야 더 정확할 데뷔작 <그린 파파야 향기>에서 파파야의 풋내는 1950년대 베트남의 기억으로 순수하고 변함없는 가치의 세계를 결정화합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홍차와 마들렌 과자의 맛과 향기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현 듯 불러오듯이. ‘비자발적 기억’이라 프루스트 자신이 명명하고 ‘프루스트 효과’라 널리 알려진 현상입니다. 냄새, 맛 같은 감각이 뜻하지 않게 과거의 시간을 다시 살게 하는데, <프렌치 수프>에서도 외제니의 죽음후 슬픔과 실의에 빠져 두문불출하는 도댕이 그녀가 만들었던 아침식사의 냄새를 맡고 그녀가 부활한 듯 이름을 부르며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미각은 물론, 후각, 시각, 청각, 촉각 등 모든 감각을 동원한다는 정의가 더욱 돋보이는 영화 <프렌치 수프> 초반 약 30분, 즉 영화의 4분의 1은 한 끼 요리와 식사에 할애되는 긴 시퀀스입니다. 불빛이나 촛불, 창이나 문으로 스며드는 햇빛의 자연 채광 장면을 아름답게 배치하였고, 부드럽고 따뜻한 빛과 색채의 화면구성에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그림이 연상될 정도입니다. 전기가 아직 쓰이지 않는 시절입니다.
식자재를 다듬고 자르는 소리, 달그락거리며 부딪히는 조리도구가 내는 소리, 음식이 만들어지는 소리, 식재료가 달군 팬의 버터에 닿아 지글거리는 소리... 대사를 덮어버릴 정도로 음향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대사는 거의 없습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인물들은 부단하게 움직이며 놀라운 요리 퍼포먼스를 선사합니다.
이들의 동선과 배경의 다른 움직임을 끊지 않고 유연하게 따라가며 담는 카메라의 길게 찍기(롱테이크) 혹은 페이크 롱테이크 덕분에 요리를 예술로 거듭나게 하는 배우들의 사실적인 연기에 경탄하게 됩니다. 카메라도 움직이고 배우도 움직이는 난이도 높은 롱테이크 촬영이 역동적인 현실감을 강조합니다. 트란 안 훙 감독 연출의 특징입니다. 한편 배우들의 클로즈업 대신 조리도구, 요리하는 손과 음식의 잦은 클로즈업은 <프렌치 수프>의 서사에서 요리가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 보여줍니다. 연기를 내며 담아지는 음식은 식감과 냄새와 맛을 불러일으키는 착각을 줄 만큼 섬세한 시각적 작품과 같습니다.
이 긴 시퀀스는 영화에서는 점심부터 해가 지기 시작할 때까지 계속되는 미식가들을 위한 식사에 해당합니다. 시퀀스가 보여주는 공감각적 연출은 다른 음식 영화들과 비교하면 더 두드러집니다. ‘food porn'이라 불리는 요즘 흔한 ‘먹방’ 장면들과 가장 극단적인 대조가 될 것입니다. <프렌치 수프>에서는 조리 장면과 요리에 관한 대화 장면은 많은 반면, ‘힘차게 먹는’ 장면을 생략하고, 미식영화답게 음식을 맛보는 장면만 보여줍니다.
단, 너무나 맛있게 먹는 듯 보이는 오르똘랑(ortolan, 멧새의 일종인 오르톨랑을 아르마냑 증류주에 담근 다음 오븐에 구운 요리인데 ‘너무 맛있어서 신이 모르게 몰래 먹었다’는 요리로 유명하다. 작은 새가 노래를 못하도록 어두운 상자에 가두고 기장을 먹여 살찌운 다음 증류주에 담그는 요리법이 잔인하고, 하도 잡아먹은 나머지 멸종위기에 속해 현재는 금지되어 있지만, 아직도 허가해 달라는 시위를 할 정도로 유명한 프랑스의 별미요리다) 시식 장면은 미식가들이 흰 천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먹기 때문에 관객은 볼 수 없습니다. 마치 종교 의식처럼 신기한 장면입니다. 그 음식은 하도 맛있어서 ‘신도 모르게’ 먹었다고 하는 음식이니까요.
음식영화, 미식 VS 식탐
대체로 음식영화는 음식과 행복을 연결합니다. 요리로 격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달콤쌉싸름한 초콜릿(Como Agua para Chocolate)>(감독 알폰소 아라우, 1992) 같은 영화도 있고, <바베트의 만찬(Babettes Gaestebud)>(감독 가브리엘 악셀, 1987)은 질시와 의심에 찬 마을사람들이 평생 처음 맛보는 프랑스 고급요리로 반목을 멈추고 행복과 신의 은총까지 느끼게 되는 미각의 초월적 힘을 보여줍니다. 19세기 후반 파리의 ‘카페 앙글레’에서 여성 셰프였다는 여주인공, 겸손하고 헌신적인 바베트에게, ‘요리의 예술가’라고 일컬어지는 외제니의 캐릭터가 겹쳐집니다.
맛과 감각을 음미하고 탐구하는 미식이 아니라 추한 식욕을 보여주는 정반대의 예도 영화에는 많습니다. 잉여와 굶주림 사이에서 음식은 일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건강을 보장하는 필수적인 물질이면서도 쾌락을 악덕의 일부로 보고 파괴적인 탐욕의 은유가 됩니다. 종교는 음식에 관해 규칙과 금지 사항을 강요했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식탐의 전복적 은유를 통해 부르주아 계급의 탐욕을 비판하는 <그랑 부프(La grande bouffe)>(감독 마르코 페레리, 1973)는 가장 충격적인 예입니다. <톰 존스의 화려한 모험>(감독 토니 리차드슨, 1963)의 먹는 장면을 패러디한 듯 보이는 <가여운 것들>(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2023)이나, <슬픔의 삼각형>(감독 루벤 외스트룬트, 2022)의 장면들은 부르주아 계급의 파멸적 식탐을 묘사합니다. 음식을 먹는 행위의 묘사는 성적인 비유와도 가깝습니다.
미식(gastronomie) 단어는 1801년에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하는데, 프랑스 요리의 세련화와 더불어 자유주의와 쾌락주의의 부상과 함께 요리를 즐김과 탐구의 대상으로 삼게 되는 경향입니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전담 요리사를 고용한 부르주아 계급을 중심으로 프랑스 고급요리(오뜨 뀌진 haute cuisine)가 질적으로 발전하는 한편,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 이후 식당이 증가하여 시민계급이 고급요리를 접하기 쉬워졌습니다. 레스토랑 가이드가 등장하고 요리책이 쏟아져 나왔으며, 프랑스요리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미식의 황금기입니다. 사람들은 요리법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고, 미식저널과 미식비평이 활발했으며, 작가들은 미식문학을 꽃피웠습니다.
그러나 노동의 성차별적 분업으로 귀족계급이나 부르주아 계급 요리사들은 남성요리사였고, 중산층 이하나 노동시장은 여성요리사를 고용하였습니다. 부르주아 가정의 요리사들은 숙련된 장인 예술가임이 분명했지만, 여성요리사들은 서민 가정의 푹푹 끓이는 음식처럼 단순하고 전통적인 시골요리를 지키는 ‘부엌의 어머니’로 경시되기도 하고 옹호되기도 했습니다.
유라시아 왕자에게 대접하기로 계획되었다가 외제니의 죽음으로 도댕이 거듭 실패하는 가장 프랑스적인 음식 ‘뽀또푀(pot-au-feu)’가 바로 그런 요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