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 영화의 세계성 연구
정재형(영화평론가, 동국대교수)
I. 서론
1. 선행연구의 검토
본 연구는 박찬욱 감독영화의 세계성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다. 그 세계성 즉 국제성이란 국내적 성과의 국제적 성공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에서부터 서구인 시각의 일방적인 평가에 기댄 국제적 성공이라는 부정적 시각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부정적인 시각을 반영하는 연구로서는 이지연의 논문을 예로 들 수 있다.
박찬욱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이지연은 서구에서 아시아 영화가 환영받을 수 있는 데에는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바 있는 오리엔탈리즘이 작용한다고 보았다. 특히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부과된 지식과 관점, 어휘들 속에서 자기 자신들을 인식하고 그 체계 안에서 자신들에 대한 지식을 만들어내고 오리엔탈리즘이 그들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을 재현하는”소위 ‘셀프 오리엔탈리즘(self-orientalism)'에 대해 주목한다. 오리엔탈리즘적 관점이란 단지 서구인의 관점만이지만 셀프 오리엔탈리즘이란 자국인 스스로 서구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관점이란 점에서 자기모멸적 혹은 반대로 전략적인 관점이다. 오리엔탈리즘의 문제는 “타자로서 부여된 구획적인 차이 -‘일본적인 것(Japaneseness)' 혹은 ’중국적인 것(Chineseness)'- 를 만족시키는 영화들이 유럽영화제 등에서 선호된다는 사실로부터”시작한다.
서구에서 박찬욱의 영화가 동양적인 영향권 내에서 환영받은 것은 사실이다. “박 감독의 영화는 ‘동양극한(Asia Extreme)'으로 분류된다. (동양극한이란) 동양뿐 아니라, 유럽, 미국에서 컬트로 칭송되는 영화들로서, 특히 남한, 일본, 홍콩, 태국의 극한폭력영화를 일컫는 용어다." ‘동양극한'이라는 레이블은 그런 점에서 서구 주체에 대해 동양 타자가 갖는 지역적 특성을 구분하는 근래의 오리엔탈리즘 기획에 속한다. 동양극한은 동양의 잔혹한 영화들을 일컫는 서구 평론가들의 표현이다. 박찬욱이 그러한 기획에 편승하여 국제화되는 지점에 놓여있다는 것이 우연의 일치는 아니다. 이지연은 이러한 서구의 발견을 서구중심의 영화사로 보고자 한다. 그녀는 “유럽의 영화제 등을 통해 주어진/혹은 인증된 영화의 가치와 서구의 기억과 관심중심으로 생산된 지식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와 영화의 가치나 지식에 대한 보다 권위있는 잣대로서 작용하게 된다”고 비판한다.
이지연은 이러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공간을 ‘사이의 공간(in-between zone)'으로 놓고 이 상호작용의 양상을 점검해보려 한다. 이 사이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1)유럽의 영화제와 영화비평, 국제적인 아트영화배급망의 경로가 내셔널 시네마, 아트 시네마, 작가감독이라는 범주를 통해 동아시아 영화들이 유통되는 레이블을 만드는 과정의 점검, 2)사이의 공간에 놓인 감독들이 어떻게 참여하고 반응하는가, 3)그러한 반응이 국내의 산업적, 민족주의적 정황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이러한 ’사이의 공간‘에 놓인 감독들은 “국제적인 공간에 속하고, 동시에 국내에 속하면서도 어느 한곳에 결정적으로 귀속되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면서 “국제적인 공간에서의 위치가 이들의 국내에서의 위치와 평가에 영향을 미치고, 국내에서의 관계와 위치성이 다시 이들의 국제적인 공간에서의 위치성에 영향을 미치는” 감독들을 말한다. 과거 임권택 감독이 그랬고 현재 김기덕, 홍상수, 이창동, 박찬욱, 김지운, 이명세, 봉준호 등이 그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지연의 결론이 이들 감독들의 역할을 단지 비판적으로만 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어떻게 기능했느냐에 따라 해석과 평가는 달라진다는 양가성을 갖고 있다.
2. 문제 제기
본고에서는 이지연의 이러한 양가성에 근거하여 박찬욱 감독의 세계성에 대해 분석해 보고자 한다. 박찬욱 감독이 서구의 ‘동양극한’ 브랜드에 기대어 세계로 진출한 점에서 오리엔탈리즘 성향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단지 그 지점에서만 설명할 수 없는 박찬욱 특유의 반동양적 성향은 그를 단순한 오리엔탈리즘 감독으로만 설정할 수 없는 성격이다.
박찬욱의 경우는 임권택과 달리 오리엔탈리즘만 작용하여 국제화된 경우가 아니다. 박찬욱의 경우는 오히려 국가 간 경계가 옅어지고 서로 긴밀하게 교류하는 국가횡단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국가횡단주의(transnationalism) 시대의 국제화는 더 이상 비미국영화가 국제관객을 확보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국가횡단주의 시대에 맞게 박찬욱의 성향은 지나치게 한국적이지 않고 오히려 서구적 경향이 더 진하다. 박찬욱 영화에는 다른 ‘동양극한’ 영화들과는 달리 현실을 드러내는 이념이나 정치성이 없다. 그 영화들은 정치적 태도를 갖는다. 대표적으로 미이케 다카시의 <생 혹은 사>, 푸르트 첸의 <만두>는 사회병폐를 강조한다. 박찬욱의 영화가 정치적이지는 않지만 그러한 동양극한의 레이블 아래서 작용하는 건 사실이다. 대신 박찬욱 영화는 그로테스크하고 부조리해서 사실주의적이지 않다. 그것은 일본의 망가, 중국의 무협영화, 일본 애니메이션, 컴퓨터게임 등의 영향이다. <올드 보이>의 망치 난투신은 게임의 사이드 스월링(side-swolling) 기법과 유사하다.
박찬욱영화의 주제는 정치적 이념이 없다. 오직 생존에 대한 몸부림만이 있다. 그에겐 선악이 없다. 그러한 주제의식은 첫 작품에서부터 일관된 것이다. <달은 해가 꾸는 꿈>에서 주인공은 조직의 선배에게 상해를 입히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한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박 사장은 류를 죽일 때 그가 선한 것을 안다. 하지만 딸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JSA>도 이념 없음을 강조한다. <복수는 나의 것>은 단지 개인의 복수를 그린 것이고 <올드 보이> 역시 한국사회의 역사성에 대한 묘사가 없다.
박찬욱이 한국의 현실, 정치보다도 서구영화, 서구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다음의 인터뷰에 잘 나타나 있다:
2004년도 인터뷰에서 박찬욱은 자신이 어떻게 감독이 되었는가를 설명했다. “원래 나는 예술비평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히치콕의 <현기증>을 보았다. 영화 보는 동안 머릿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최소한 영화감독이라도 되지 않으면 죽을 때 정말 후회할거야.’ 히치콕 영화가 처음에 큰 영향을 준 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내게 영향을 준 사람들은 많다. 예를 들면 소포클레스, 세익스피어,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발자크, 졸라, 스탕달, 오스틴, 필립 딕, 젤라니, 보네커트 등이다.
박찬욱은 히치콕의 <현기증>을 보고 영화감독의 길을 결정했다. 그에게 서부극은 많은 영향을 주었고 특히 <아파치>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였다. 구로자와의 사무라이 영화가 존 포드의 서부극 영향을 받았듯이, 또 구로자와 영화가 서구 감독들에게 영향을 주었듯이 박찬욱 역시 교차문화적 수분공급(cross-cultural pollination)을 통해 그의 성격을 구성했다. 그의 서구 감독에 대한 경외는 대단해서 <올드 보이>가 깐느에서 수상했을 때 인사말에서 로만 폴란스키와 만나 사진을 같이 찍은 것이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유럽영화제들이 할리우드와 공생의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사실은 다음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유럽에서 영화제들이 설립된 초기의 이러한 동기는 최근에 와서 할리우드와의 공생관계가 두드러진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시 화제가 되는 할리우드 영화를 개봉작으로 선정한다든지(2006년 칸 영화제의 개봉작은 <다빈치 코드>였다.) 할리우드 스타들을 앞다투어 초청한다든지 하는 형식으로 영화제들은 적극적으로 할리우드와의 연계를 모색해왔다.
서구지향적이었던 박찬욱의 영화가 국제화되는 데는 이런 배경도 한몫을 했다. 결국 <JSA>는 <글래디에이터>의 작가이며, 제작자인 데이빗 프랜조니(David Frenzoni)에 의해 미국에서 리메이크되기로 되어 있다. 대신 스토리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의 성향은 컬트적이지만 컬트뿐 아니라 상업영화계에서도 인기가 있었다. 2004년 깐느에서 <올드보이>가 수상했고 유니버셜은 판권을 사서 33살의 대만계 미국감독 저스틴 린(Justin Lin)에게 감독을 맡겼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