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 혹은 ‘일상의 정신병리학’
-홍상수 영화의 주제의식, 영화적 전략 그리고 세계성*
조혜정(영화평론가,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
1. 시작하며
아마 홍상수만큼 해외에 알려진 한국감독도 드물 것이다. 지금까지 감독한 13편의 장편영화 중 <생활의 발견>(2002)을 제외한 12편의 영화를 국제영화제 초청 혹은 수상작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칸을 통해서 명성을 쌓기 시작한 홍상수는 프랑스 비평가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베를린, 로테르담, 뉴욕, 토론토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받음으로써 그 존재감을 확인시켰다.
제목(제작년도) | 국제영화제 초청 및 수상내역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 | 제15회 밴쿠버국제영화제 ‘용호상’ 수상 제26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타이거상’ 수상 제42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신인감독상 수상 |
<강원도의 >(1998) | 제51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특별언급상 |
<오! 수정>(2000) | 제13회 도쿄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제53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초청 |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3) | 제57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제42회 뉴욕영화제 초청 |
<극장전>(2005) | 제58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제43회 뉴욕영화제 초청 |
<해변의 여인>(2006) | 제5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초청 제44회 뉴욕영화제 초청 제3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리젠테이션” 초청 |
<밤과 낮>(2008) | 제5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제46회 뉴욕국제영화제 초청 |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8) | 제62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 초청 제34회 토론토국제영화제 특별상영 부문 초청 |
<하하하>(2010) | 제63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초청 제13회 도빌아시아영화제 “파노라마” 초청 |
<옥희의 영화>(2010) | 제6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오리종티” 초청 제40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경쟁부문 ‘리턴 오브 타이거상’ 수상 제35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초청 |
<북촌방향>(2011) | 제64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초청 제41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스펙트럼” 초청 제30회 밴쿠버국제영화제 “드래곤스 & 타이거스” 초청 제44회 시체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뉴 비전” 초청 |
<다른 나라에서>(2012) | 제6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
홍상수 영화가 해외에서 특히 유럽에서 각광 받는 이유는 뭘까? 우선 홍상수의 영화가 이른바 ‘작가주의’(Auteurisme)적 관점을 만족시키는 요소들을 함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영화연구자 앤드류 새리스(Andrew Sarris)는 작가를 판별하기 위한 기준으로 ①기술적 능력 ②확연히 구분 가능한 개성 ③개성과 환경 사이의 긴장이 만드는 내적인 의미를 꼽았다. 이 중에서 ‘확연히 구분 가능한 개성’은 그 영화작가만의 독특한 인장(印章)과도 같이 받아들여졌고, 특히 일관된 주제의식과 세계관의 투영, 독특한 스타일은 작가의 개성을 뒷받침하는 요소 이른바 작가의 ‘표식’으로 여겨졌다. 작가주의 혹은 정책은 1950년대 중반 프랑스에서 트뤼포(F. Truffaut)를 비롯, 고다르(J.L. Godard), 로메르(E. Rohmer), 리베트(J. Rivette) 등 『까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éma)에서 비평활동을 하던 누벨바그(nouvelle vague) 감독들에 의해 주창되어 프랑스는 물론 서구의 영화학계 및 평단을 지배한 개념이다. 작가론 및 작가주의가 작가적 천재성에 대해 낭만주의적이고 비정치적인 가치평가를 했다는 공격을 받고, 텍스트 자체나 텍스트의 구조 혹은 텍스트를 둘러싼 상호작용, 예컨대 관객성(spectatorship) 연구와 같은 분야를 간과한 데 대한 비판에 직면함으로써 작가론과 작가주의는 낡은 이론이 되었지만, 영화의 예술성에 대한 신념과, 작가의 역량 및 그의 영화에 대한 관점을 살펴보는 데 있어 평단은 여전히 작가주의적 관점이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탐구는 정체성과 자기반영성(reflexivity)을 통하여 영화매체의 근원,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자의식을 일깨우고, 보는 사람의 인식작용을 환기시켜 ‘각성’의 효과까지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홍상수는 놀랄 만큼 일관된 주제의식을 보여주고, 영리하게도 자신의 영화 속에서 영화매체를 끊임없이 환기시키며 영화감독으로서의 자의식을 투영하기를 즐긴다. 이러한 홍상수의 화법과 스타일은 ‘영화가 작가(감독)의 예술’이라는 작가주의 명제를 만족시키고, 영화매체에 대한 근원적 친연성(親然性)을 작동시키며, 일상의 리얼리티로써 지금/이곳의 단면을 예리하게 드러내 보는 사람들을 탄복시킨다.
뿐만 아니라 극동아시아 한국에서 날아온 홍상수의 영화가 보여주는 주제의식 또한 매우 보편적이어서 서구인의 시각에서 보아도 그다지 낯설지 않으리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의 영화는 거시적 담론을 끌어내기 보다는 미시적이고 생활에 밀착되어 있으며, 사건보다는 캐릭터 중심이고, 이국적 정조보다는 현대적 감성과 관계에 집중되어 있고, 일상의 부조리함과 균열을 유머와 냉소적 터치로 구현한다. 일상의 미니멀리즘에 의해 포착된 인물과 풍경은 에릭 로메르가 재현하는 일상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며, 로베르 브레송의 절제의 모더니즘적 터치와, 루이스 부뉴엘의 부르주아계급에 대한 지독한 냉소를 상기시킨다. 홍상수 영화인물이 빚어내는 소동극은 부뉴엘의 블랙코미디적 감성과 로메르 영화인물들이 직면하곤 하는 ‘모럴’의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뉴엘과 로메르, 브레송을 연상시키지만 그만의 개성을 잃지 않는 홍상수에게 프랑스 평단이 매혹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부뉴엘과 브레송, 로메르는 바로 프랑스 영화의 소중한 전통 아닌가? 또한 조잡한 인물의 지리멸렬한 삶의 풍경들을 시니컬한 방식으로 때로는 블랙유머로써 들추어내는 홍상수는 세상에서 고립되고 관계로부터 소외되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그의 영화인물과 상황을 통하여 예리하게 제시함으로써 서구 영화평자들의 관심을 여전히 붙들어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이례적일 만큼 홍상수 영화가 국제영화제들로부터 다투어 초청 받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면서 이 글에서는 홍상수 영화의 주제의식과 영화적 전략을 살펴보고 그의 영화인물들을 분석할 것이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