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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Film Crit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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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2012 전주 세미나) 산업화시대의 한국영화에 나타난 권력의 이미지 - 조희문 / 토론자 : 신강호

산업화시대의 한국영화에 나타난 권력의 이미지

조희문(인하대 교수)

 

 

영화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하여야 하는가?

 

<도가니><부러진 화살>2012년 한국영화계에서 주목받으며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흥행적인 면에서는 그보다 더 큰 성과를 거둔 경우도 있고, 작품적인 평가에서 다른 영화들이 앞선 경우가 있었지만 이들 영화는 특정한 사실을 소재로 다루었고, 감독(또는 제작자)의 주장이 지극히 정치적이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관심을 받았다. <도가니>는 어느 장애인 교육시설에서 벌어진 학대사건을 소재로 다루었고, <부러진 화살>은 모 대학의 재임용 과정에서 탈락한 교수가 석궁으로 담당 판사를 위협한 사건의 진행을 재현하고 있다.

<도가니>는 해당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을 바탕삼아 영화로 재구성했다. 학교 안에서 은밀하게 진행된 가학적 성폭력, 사건이 드러난 뒤 가해자들을 문책하는 과정에서 경찰, 법원 등 각계의 담당자들이 보여주는 권력적 결탁을 비판한다. 등장인물, 상황의 재구성, 사건을 무마하는 비리의 카르텔은 객관적인 사실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소설로 재구성된 것이며, 영화는 다시 그것을 가감하며 각색했다. 특정한 사건에서 모티브를 차용하기는 했지만, 영화는 사실처럼 보이는 픽션을 구성한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상영된 이후, 원래 사건이 재조명되고, 사건 관련자들의 처벌이 미약했다는 여론이 일었다. 사건의 진원이라고 알려진 학교의 운영에 대해 감사가 진행되고, 관련자들은 다른 혐의로 처벌받았다. 결국 학교가 폐쇄되는 과정을 겪었다. 사건이 발생한지 수년이 지난 뒤 만들어진 영화가 과거의 사건을 다시 조명하게 만들고, 결국 응징자의 역할을 한 경우다.

<부러진 화살>은 더욱 논란의 대상이다. 이 영화 역시 구체적 사건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재판 과정 또는 해당 사건의 재판관에 대한 비난을 핵심적인 주장으로 표현한다. 재판부가 사건의 경과를 의도적으로 왜곡했거나 피의자에게 감정적인 제재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결과적으로 해당 사건의 재판은 정당하지 않으며, 법원의 권한이나 권위가 함부로 남용되고 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소송 당사자의 권리나 법정의는 사라졌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비판 또는 비난은 한국영화 특히 2000년대 이후 영화들에서 자주 나타난다. 그 대상은 폭력화된 국가권력이거나(<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작은 연못> ) 정당성을 잃어버린 국가권력을 방조하거나 지원하는 외부권력(<괴물> <웰컴투동막골>)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국가지도자의 도덕적 타락(<그때 그사람들> <효자동이발사>)을 조명한 경우도 있다. <화려한 휴가><박하사탕> 같은 영화들은 정당성을 잃어버린 권력, 그들의 통제하에 있는 군대가 무고한 시민을 학살했다는 주장을 담았다. 남파간첩 등으로 활동하다 체포된 뒤 사상전향을 거부한 채 오랫동안 수감생활을 하고 있거나 출소한 비전향장기수들의 존재를 다룬 다큐멘타리 <송환>도 결론적으로는 이념적 갈등을 조장하며 반인권적 행동을 계속하는 남한정부의 완강함을 비난한다. <도가니><부러진 화살>은 경찰, 법조 또는 학교 등 제도화한 권력이 선량한 개인을 유리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같은 경향의 연장선에 놓을 수 있다.

이런 영화들에서 드러나는 소재의 선택과 재현은 진실을 향한 접근인가 아니면 영화 구성을 위한 편의적 활용인가? 진실을 향한 주장이라면 생략과 왜곡, 변형이 과다하고, 극적인 과장을 위한 수단으로만 한정한다면 오히려 사건을 극적으로 과장함으로서 사실을 왜곡하고 선동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결국 이같은 의문은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또는 영화는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연결할 수 있다.

정치적 변혁과 한국영화의 산업화

 

한국영화는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쉬리>가 새로운 흥행기록을 세우면서 한국영화를 바라보는 인식과 평가는 크게 달라졌다. 흥행은 크게 증가했고, 비평적 평가도 우호적으로 변했다. <쉬리>가 흥행기록을 돌파한 뒤 <공공경비구역 JSA>가 다시 흥행기록을 갈았고 또 다시 뒤를 이어 <친구>가 새로운 기록을 만들었다. <실미도>는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1000만명 관객 기록을 세웠다. 전국관객 1000만명은 당시까지 한국내에서 상영된 모든 영화의 흥행기록 중 최고의 숫자였다. 이전까지는 한국영화나 외국영화를 막론하고 그만큼의 흥행을 한 경우는 없었다. ‘1000명의 흥행기록은 한국의 영화시장이 급속하게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상징처럼 보였다. 관객들의 열광적인 지지가 없다면 실현 불가능한 숫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미도>의 놀라운 기록은 <태극기 휘날리며>가 뒤를 이으면서 곧 바뀌었다. 이때 한국영화 흥행은 거대한 쓰나미가 들이치듯 폭발하는 분위기였다. <왕의 남자> <괴물>이 잇따라 새로운 기록을 갈아치웠다. 새로운 기록은 또 다른 기록에 묻히면서 순위가 바뀌는 일이 거듭되었다.

한국영화가 가시적인 성장과 변화를 보인 시기는 정치적 측면에서도 큰 변화를 보인 시기와 겹친다. 1998, 권위주의 시절부터 한국민주화 운동의 상징처럼 통하던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한국의 정치적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지배권력으로부터 극심한 견제와 박해를 받던 인물이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므로서 한국내의 정치상황이나 국가적 민주주의 상황은 획기적으로 변화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한국은 군국주의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거쳐 해방을 맞은 후 남북한으로 분단되었다. 남한에는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북한에는 공산정권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등장했다. 남한과 북한은 이념체제가 달랐고, 대립과 긴장이 계속되었다.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한 한국전쟁은 수많은 희생자와 파괴를 남긴채 휴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같은 갈등과 긴장은 남북한간의 정치적 대결과 체제경쟁의 요인이 되었다. 산업화는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설정되었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권위적 체제가 등장했다. 경제적 성장과 산업화는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정치 분야에서는 저항과 반발이 빈발했다. 그같은 시대에 김대중, 김영삼 같은 야당 인사들은 민주화 운동의 대표적인 지도자로 주목받았다.

이 시기 한국영화는 현실을 직시하며 반영하는 것을 주저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1970년대 영화의 대체적인 경향은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내용을 담거나 소프트한 멜로드라마가 주류를 이루었다.

영화정책을 주도하고 있던 문화공보부는 우수영화의 개념을 정부정책의 취지에 부응하는 영화로 설정하고, 대종상 시상식 등을 통하여 공개적으로 유도하는 정책을 펴기도 했다.

<바보들의 행진>처럼 당시 한국사회의 억압적이며 우울한 분위기를 반영하며 소극적으로나마 비판하고 저항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정치적 현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외면했다. 이른바 호스테스영화하이틴영화로 불렸던 멜로드라마, 청소년 영화가 유행했던 현상이다.

1980년대, 대통령의 시해와 정치적 혼란, 권위주의 정권의 등장 등 일련의 격변이 잇달았던 시기의 영화들도 현실을 반영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애마부인으로 상징되는 성애영화들은 보다 자극적인 성적 이미지를 드러내며 관객들에게 호소했고, 큰 흐름을 이루었다. 이런 흐름들은 1990년대에도 상당한 수준으로 이어지며 한국영화의 경향은 엔터테인먼트화하는 추세를 보였다.

<그들도 우리처럼>이나 <구로아리랑> <칠수와 만수> 같은 영화들은 노동현장의 비인간적 현실을 조명함으로서 노동현장에 접근하거나 여전히 권력화한 정권의 어두운 그림자를 노출하려는 시도가 있기는 했지만 주류 영화계에서는 위험한 시도로 비치는 정도였다.

특히 80년대 후반부터 가시화된 대기업의 영화(영상) 산업분야의 참여확대는 기존의 행정적 통제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자본의 통제가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영화제작 규모가 커지고, 미디어의 다양화 현상이 현실화함에 따라 사회적 논란을 일으킬 만한 소재나 주제에 대해서는 묵시적인 기피 대상이 되었다.

영화제작 입장에서는 행정적 통제가 완화되거나 폐지되는 경향이 가시화함으로서 소재선택이나 표현의 강도 등에서 훨씬 자유로워졌지만 투자자본의 동의와 지지를 끌어내는 일은 상대적으로 점점 어려워지는 경향을 보이게 된 것이다.

자유로운 영화제작이라는 점에서는 자본의 통제가 더욱 민감하고 대응하기 어려웠다. 행정적 통제는 그 대상이 명확하며, 관리자와 수용자의 관계를 대립적인 구도로 설정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반면, 자본적 통제는 그 대상도 분산적이어서 특정한 표적을 지정하기가 어렵고, 규제 또한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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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안숭범 사무총장

등록일201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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